환경법률센터 칼럼

[기고] 4대강 바로잡을 기회는 있다

작성자
환경법률센터
작성일
2013-01-28 00:00
조회
1104


바로 잡을 기회는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4대강 사업은 어떤 의미였을까? 기후 변화를 대비하고 가뭄을 해결하는 사업, 22조를 쏟아 붓는 토목사업, 강을 죽이는 사업. 홍수예방을 위해서 4대강 사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홍수피해는 눈길 받아 보지 못한 지류에서 걱정이었지 해마다 둑을 쌓고 대비한 본류의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물 걱정을 해야 하는 곳은 정작 산간도서 지역이었지 4대강을 끼고 있는 대도시가 아니었다. 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4대강 사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고인 물은 썩는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이치다. 4대강 사업은 분명 상식적이지 않은 사업이었다.


 


4대강 소송을 진행하면서 4대강 사업은 단순히 상식에 맞지 않은 사업일 뿐 아니라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사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4대강 마스터플랜이 발표된 것은 2009. 6. 중순경이다. 그로부터 6개월 이후 공사가 시작됐다. 22조라는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전국토를 개조하는 대규모 토목사업이 6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진행된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하면서 국회에서의 합의과정이 생략되었다.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들과의 합의로 만들어낸 수자원장기종합계획, 유역종합치수계획과 하천기본계획이 모두 한낱 종이종각이 되었다. 환경영향평가에 고작 3개월이 걸렸을 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건 오로지 ‘나는 이렇게 생각하노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씀의 힘이 모든 것을 뒤집어 버렸다. 이유를 묻지 말지라.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더 좋아진다고 하면서도 수질예측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 측 증인은 수질예측요약결과를 이메일로 보고했을 뿐 보고서는 따로 만들지 않았다는 황당한 답변을 했을 뿐이다. 정부의 침수자료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 원고 측 전문가들의 침수예측자료가 잘못됐다며 물고 늘어졌을 뿐이다. 이유를 묻는 자에게 벌이 있을지니.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단체나 전문가들은 불법시위단체가 되고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이 되었다.


법치주의란 사람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를 의미한다. 4대강 사업은 법치가 아니라 말씀의 지배로 퇴행하는 사건이었다. 4대강 사업이 법원으로 갔을 때, 모두들 정권의 명운을 건 사업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낙동강 재판에서 제1심 법원은 문제는 있지만 필요한 사업이라고 했고 제2심 법원은 위법하지만 이미 공사가 완료되었으니 공익 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선언했다. 법정에서도 상식과 법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정할 수 없는 결과였다. 4대강 마스터플랜만으로는 4대강 사업이 왜 필요한지 설명될 수 없었다. 망가진 강, 수질오염, 매년 수천억 원의 유지관리비,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부담은 4대강 공사의 완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될 거라는 사실도 자명해 보였다. 대법원의 응답을 기다리는 와중에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설계 부실로 보의 안정성을 장담하기 어렵고, 수질은 나빠졌으며, 강바닥을 일률적으로 준설한 결과 불필요하고도 과다한 유지관리비용이 소요될 것이라 한다. 감사원의 고백은 늦었지만 진실을 말한 용기 있는 일로 칭찬할 일도 아니지만, 절묘한 타이밍의 자기고백으로 폄하할 일도 아니다. 애초부터 손바닥으로 진실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분명한 것은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계기로 우리는 소중한 기회를 다시 한 번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씀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로 복귀할 기회 말이다. 진상을 명명백백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불도저에 깔린 사회적 합의절차를 되살리는 일이다. 4대강 사업의 문제가 무엇이고 이러한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인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떤 건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말씀을 기다리는 일도 이제 그만하자. 대신 국민의 말씀들이 흘러넘치게 하자. 국민의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법치다.  





환경법률센터 변호사 정남순


위 글을 2013. 1. 28.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